집에 남는 서브 노트북 개인 서버로 활용하기
때로는 간단무식한 방법이 최고시다.
하미연4분 읽기
MacBook을 쓴 지 거의 10년됐지만 여전히 가끔 윈도우가 필요합니다. 특히 게임 때문에 윈도우 게이밍 노트북을 서브 노트북으로 하나 갖고 있는데요. 요즘은 웬만한 공공기관, 은행 웹사이트도 Mac OS를 지원하다보니, 게임할 때 말고는 쓸 일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1년 중 이 노트북이 켜져 있는 날은 다 합쳐도 몇 달이 안 됐습니다. (30대 직장인은 말로만 게임 게임 하지 실제 플레이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노트북을 24시간 쉬지 않고 켜둡니다. 제 개인 서버 역할도 겸하기 때문입니다.
서버는 필요하고, AWS EC2는 조금만 고사양이어도 유료고, 그냥 남는 노트북 24시간 켜두자.
AI를 제 모든 일에 쓰면서 SaaS를 쓰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고, 제가 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에 올린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터미널 위에 할 일 제목을 띄워주는 프로그램도 여전히 매일 잘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매일 특정 시간에 알아서 작동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Anthropic 블로그를 번역해서 매일 보내주는 Discord 봇
가장 먼저 만든 건 Anthropic Blog의 포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매일 일정 시간에 보내주는 Discord 봇입니다. 저는 이메일은 +999가 되도 잘 안 보는 편이라, (이메일 정리 Agent도 조만간 만들 생각입니다.) 그나마 잘 보는 메신저 알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Discord 봇이지만, Discord 봇 자체는 알림 표시 말고는 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실제 동작은 이렇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Claude Code가 Anthropic 블로그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포스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한국어 번역본을 작성한 뒤 github에 커밋하고 푸시합니다. 그리고 github로 올라간 번역본 링크를 Discord로 전송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OpenAI 개발자 블로그도 연결해뒀습니다. 신규 기능 업데이트도 종종 체크해야 하고, 블로그를 살펴보니 AI 연구 결과를 다룬 포스트도 보여서 정기적으로 읽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현할 때 가장 신경썼던 건 '특정 시간에 알아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정 시간에 정해진 작업을 실행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여럿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AI가 지금 정도는 아니었던 작년만 해도 저는 Cursor의 도움을 받아 파이썬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실행 자체는 제가 직접 터미널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AI에게 일단 물어보기 보다는, 제가 아는 개발 지식 안에서 해결책을 찾던 시절이라 자동화는 무조건 서버가 필요하다 판단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간단한 업무 자동화 때문에 AWS EC2 사는건 귀찮고, 무료 티어가 있다지만 용량 부족으로 결국 유료를 썼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올해는 좀 더 나아졌습니다. 무조건 AI에게 기술적 해결책을 묻게 되었고, AI에 조언에 따라 맥북의 cron을 사용해 오전 10시쯤 실행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cron이 실행되려면 컴퓨터가 켜져 있어야 하는데, 오전 10시면 출근 시간이니 최소한 평일 실행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서브 노트북을 24시간 켜두고 여기서 실행되도록 바꿨습니다. 제 생활 패턴에 프로그램 실행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어졌고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실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간 제약이 사라지니 생겨난 생각지도 못한 쓸모
지인에게 내 컴퓨터 원격 제어 열어주고 게임 서버 호스팅하기
최근 지인들이랑 펠월드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요. 다른 사람과 멀티 플레이를 하려면 그중 1명이 서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게임을 켜야 다른 사람도 접속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개인 일정상 저녁마다 제 플레이 시간을 보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인이 제 컴퓨터를 원격 제어해서 펠월드 서버를 켤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저 같은 비개발자도 정말 뭐든지 만들 수 있다 보니, 이전보다 '될까?' 하는 발상을 훨씬 자주 합니다. Claude Code에게 물어보니 펠월드 서버를 켜는 게 결국 .exe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거라서 원격 제어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Discord에 봇을 멘션해서, 오타 없이 정확히
@펠월드리모콘 서버 켜라고 말하면 내 컴퓨터에서 펠월드 서버 프로그램.exe파일이 실행되게 해줘. 반대로서버 꺼라고 하면 프로그램이 꺼져야 해. 참고로 내 컴퓨터는 24시간 켜져 있을거야.
그리고 저는 코드 하나 손대지 않고 자동화 프로그램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지식이 없는 방식이라 사실 손댈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약속 때문에 밖에 나가 있어도 지인은 언제든 제 컴퓨터의 펠월드 서버를 켤 수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커리어 고민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쓰는 시대는 이미 왔습니다. 저 자신이 이미 소소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고 있으니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외에도 제 할 일 관리 시스템, 터미널 위의 제목 표시해주는 Mac App, 제 하루는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 위에서 돌아갑니다.
모든 사업은 고객이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가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대가를 얻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남도 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래야 저 자신의 비교 우위를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모두가 자신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쓸 수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완벽한 개인 맞춤형 소프트웨어입니다. 업데이트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VOC를 전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한 즉시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 때 IT 종사자가 되겠다고 진로를 바꿨고 지금도 이 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제 어떤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듭니다. 제 게이밍 노트북은 오늘도 켜져 있고,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작 그걸 만든 저는, 남에게 무엇을 만들어 주고 경제적 대가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집니다.